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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의시작 2

유성영화의 등장

에디슨의 축음기와 영사기를 연결하는 등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1926년 영화제작자로도 유명한 워너는 비타 폰(Vitaphone, 디스크 방식의 발성영화기)을 선보이며 유성영화의 개막을

알렸다. 이후, 필름에 직접 소리를 입히는 기술로 발전했지만,  아직 비대중적이며 수익성이 없었으며, 영화 예술가들의

소리 없는 영화만을 예술성을 인정하여 유성영화가 인정받고 대중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유성영화의 부흥이 시작된 계기는 워너가 1927년 공개한 필름영화 [재즈싱어]의 대성공이다.

초기 유성영화는 소리는 음악이나 자연 등이었지만 [재즈싱어]는 배우의 목소리가 가미되어 본격적으로 유성영화의

부흥을 알리게 되었다. 또한, [재즈싱어]는 뮤지컬 영화의 시초이기도 하다.

[재즈싱어]의 성공은 라이브 음악 연주에 대한 비용절감으로 이어져 다른 영화사들도 유성영화를 본격 제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영화는 제작자들의 대규모 투자로 이어지게 되고 영화관도 유성영화의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1928~1930년 시기에 유성영화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고 할리우드는 무성영화의 제작을 중단하게 된다.

 

초기 비타 폰 방식의 유성영화는 음악이나 자연음을 구현하였지만, 필름 녹음방식의 등장은 사람의 목소리를 입혀

배우들의 대사를 자유롭게 말함으로 내용이 연극과 문학적인 요소가 더해지며 현대 영화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영국 출신 영화감독 겸 제작자 알프레드 히치콕은 [현기증], [사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의 작품으로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할리우드는 연애, 전쟁, 뮤지컬, 서부극 등이 주요 장르가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스턴버그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루비치의 [러비 퍼레이드] 등이며, 디즈니사의 만화영화도

이 시기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에 대한 투자는 더욱 과감하여 1939년 조지 쿠커, 샘 우드, 빅터 플레밍 등 감독마저도 3명이 참가한

진정한 할리우드의 흥행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탄생한다. 제작비 425만 달러(한화 50억. 당시로는 상상

그 이상의 금액), 작가 12명, 1400명의 여배우 인터뷰,

400대 1의 대본 오디션을 뚫고 확정된 여배우 비비안 리.

당시로는 그야말로 상상초월의 투자였다.

이 영화는 세기의스타 비바 안리를 탄생시키며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대작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영화계는 암흑기를 지난다.

전후 각국의 영화는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탈리아는 현실을 직시하는 신사실주의가 등장하여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 데시카의[자전거도둑]이 대표작으로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도 '누벨마그(새물결)"라 불리는 세대가 등장한다. 

미국은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니컬스의 [졸업], 넬슨의 [솔저 블루] 등이 있다.

1950년대 전후 본격적인 텔레비젼시대를 맞아 고된 시련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이는 영화기술의 발전을 더욱 앞당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색채와 대형화면,대형 화면, 시네마스코프의 화면비율, 70미리의 대형 화면, 3D 입체영화, 360˚화면. 

음향 또한, 스테레오, 서라운드, ATMOS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의 삶에 직관 접으로 침투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삶을 돌아보며

주위를 환기시키는 매체로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선한 작용으로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