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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의 시작 1

영화의 탄생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πολιτεία]에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불빛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를 봄으로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

이처럼 인간의 신체구조를 어둠상자의 원리에 비교한 생각은 이탈리아의 조각가 다빈치, 델라 포르타에게

"암상자의 원리"를 설명해내게 했다. 이는 18세기 중반 환등(幻燈)의 개념이 나타나게 했고, 

구체적인 현실화가 되기 위한 필름과 사진기의 탄생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 1757년 I.B 베커리 : 감광막(感光膜)에 대한 광선의 작용 발견.
  • 1802년 : 영국의 웨지우드가 사진술의 기술과 정의를 확정.
  • 1826년 : 죠세프 니세포르 니엡스가 아스팔트 감광층에 영상을 고정시키는데 성공.
  • 1870년대에 렌즈의 등장. 감광체로 젤라틴 사용.
  • 1882년 : 이스트먼이 젤라틴 종이의 박리 필름을 사용.
  • 1885년 : 셀룰로이드 필름 사용.

 

영화 발명에 필요한 환등기의 개념, 사진기의 발명, 고감도 필름 등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 역사에서도 유명한 "뤼미에르(Lumière) 형제"가 1894년 2월 13일 특허를 받은

카메라 겸 영사기인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를 선보이며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들은 오늘날 영화의 탄생으로 보는 "기차의 도착"이라는 제목의 필름을 1895년

그랑 카페에서 시사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전에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가 있었지만 이는 한 번에 한 사람씩 들여다보는

구조라는 단점으로 화면을 스크린에 비추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연구가 미국, 독일, 영국 등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가 영화를 대표하게

된 것은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흥행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한 밤 중 근대과학과 함께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서양 선진국들의 영화는 짧은 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현대 예술로 눈부신 각광을 받게 되었다.

 

영화의 발전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상업적으로 더욱 성공시키기 위해 영화를 찍고 배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심을 가졌던 제작자 중 프랑스의 마술사 멜리에스는 영화계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영화를 찍다가 영사기가 멈추면서 우연히 물체가 다른 물체로 바뀌는 것을 발견(특수효과의 발견)하여

이를 발판으로 [걸리버 여행기], [달세계 여행] 등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작권의 개념이 없던 시절, 에디슨과 그 관계자들이 멜리에스의 영화를 무단 복제하여 돈 한 푼 내지 않고

배급하여  멜리에스가 영화를 떠나게 만들었다.

이는 전구와 축음기의 발명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에디슨의 명성에 흠집을 남기게 되었다.

현재의 세계적인 영화사가 탄생하게 되는 데는 에드윈 S, 포터의 최초의 서부영화

[대열차 강도, 1903]라는 작품의 대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에는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파라마운트 픽쳐스, MGM,

유니버설 픽쳐스 같은  대형 스튜디오와 할리우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제작되는 무성영화는 1910년대~1920년대에 걸쳐 세계 각국에서 자기 나라의

입장에서 제작되었다.

이탈리아 [폼페이 최후의 날], [쿼바디스],  스웨덴 [생련사련], [영혼불멸]

독일 [이기주의자],  프랑스 [철로의 백장미] 등 명작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특히, 프랑스에는  예술영화작가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카알 드 레이에르의 [심판받는 잔], 페데의 [눈사태], 에프스탕의 [아서가의 후예] 등이 좋은 예이다.

미국에서도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인톨러런스] 등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 사상에 큰 이름을 남겼다.

특히, [국가의 탄생]은 사상 처음 보는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한 영화였다.

뒤를 이어, 데밀의 [어리석은 자의 낙원], [십계], [왕중왕] 등 대작이 나왔다.

 

그리고, 채플린, 키튼, 로이드 같은 희극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희극배우들은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전성기가 지나지만 채플린이 경우는

감독, 각본까지 맡아 재능을 발휘하며 [시티 라이트], [모던타임스] 등으로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였다.

 

이와 같이 무성영화 시기에는 미국 영화가 흥행과 작품, 양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